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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의 역사

  • AD 하남문화원
  • 조회 1939
  • 2014.06.23 23:02
하남시의 역사

21세기의 수도권 부도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하남은 서울시의 강동·송파구와 인접하고 한강을 경계로 구리시와 남양주시, 남한산성을 경계로 성남시와 광주시에 접한 수도권 중동부 교통의 요충지다.

하남의 지형은 낮은 야산과 구릉지대가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 흐르는 한강에는 망월천, 덕풍천,산곡천 같은 작은 샛강이 흘러 들어가며, 강줄기의 옆에는 평야가 형성되어 있어서 B.C 4000여년 전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수로를 이용한 타 지역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여 문화가 융성했던 지역이다. 또한 남쪽으론 남한산, 동쪽은 검단산, 북쪽으론 한강이 흘러 군사의 요충지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백제의 시조인 온조께서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470여 년간 한성백제의 수도로 위상을 떨치던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한수의 쟁패를 놓고 삼국이 각축을 벌이던 역사의 현장 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선 후삼국을 통일하고 태조의 개국을 도와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조성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광주의 대호족 왕규가 세거를 이루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종때(983년)에 이르러서는 지방통제를 위한 지방관제를 실시하여 지방행정상 요지에 12목(광주,양주,충주,청주,공주,진주,상주,전주,나주,송주,해주,황주)을 설치하였는데 광주도 12목의 하나로서 읍치가 바로 하남의 춘궁동(고골) 이었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지방관제를 8도체제로 시행, 초기에는 경기도를 총괄하는 관찰사영을 수원에 두었으나, 세종 때부터 하남으로 옮겨 광주목이 있던 하남의 고골에 관아인 읍치를 두고 동,서,남,북면등 4개면(동-양근, 서-수원, 남-이천, 북-양주)을 관할 하였던 중심지였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선조임금이 피신하였던 지역이어서 부윤체제로 승격 되었으며, 전란 후 남한산성이 있는 광주(하남)는 한양을 방어해야 하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유수사겸수어사로 승격하고 남한산성내에 총융청을 설치하고, 광주의 읍치를 남한산성 안으로 옮겼다.

1800년대 말 고종황제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국8도제를 폐지하고 23부로 나누어 목.부.군.현의 명칭을 모두 군으로 단일화 하였으며, 광주와하남지역도 유수부에서 광주군으로 개편 되었다.
이후 1989년 광주군의 동부읍과 서부면, 중부면 일부 지역을 합쳐 현재의 하남시가 되어 오늘에 이르며, 1970년대 지정된 98.4%의 개발제한구역으로 인해 개발이 지연되었고 인구13만의 작은 도시이지만,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천혜의 조건을 활용한 쾌적한 미래지향적인 전원도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남시 연혁
B.C4000년경부터 사람이 거주
B.C.6년 한산아래에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궁궐을 짓다(백제 온조왕 13)
B.C.5년 도읍을 하남위례성으로 옮기다(백제 온조왕 14)
 371년 다시 도읍을 한산으로 옮기다(백제 근초고왕 26년)
 664년 한산주라고 고치다(신라 문무왕 4년)
 670년 남한주라고 고치다(신라 문무왕 10년)
 757년 한주로 고치다(신라 경덕왕 16년)
 940년 광주로 고치다(고려 태조 23년)
 983년 광주에 목을 두다(고려 성종 2년)
1577년 광주목이 부윤체제가 됨(조선 선조 10년)
1623년 유수제실시(조선 인조 원년)
1836년 서부면, 중부면 일부와 양주군 팔당리를 동부면에 편입 (조선 헌종 2년)
1907년 팔당리를 양주군에 편입
1980년 12월 1일 동부읍으로 승격
1989년 1월 1일 하남시로 승격(동부읍,서부면,중부면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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