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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궁동하남문화원29006-24
    향교고개의 철불 이야기 백제 개로왕 때의 일이다. 산이 첩첩이 쌓인 산골에 금슬 좋은 부부가 떠꺼머리 총각 동생을 데리고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남편은 성품이 어질었고 아내는 얼굴이 고왔으며, 동생 또한 몸이 건장하고 온순하여 집안이 화목했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오손도손 행복하게 잘 살았다. 이른 아침부터 젊은 부부는 밖에 나가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렸다. 어느날 지게를 진 동생이, 일을 하고 있는 형과 형수의 곁을 지나면서, “갔다 오겠어요” 라며 소리를 쳤다. “어둡기 전에 돌아오너라.” “도련님, 감자 삶은 것은 챙기셨어요?” 일하다 말고 동생을 바라보며 말하는 두 사람의 얼굴은 그지없이 행복해 보였다. 논이라고는 …
  • 춘궁동하남문화원35306-23
    법화동의 유래 병자호란 때의 일이다. 당시 임금인 인조(仁祖)가 피난간 남한산성에서는 매일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 군사의 수는 1만 2천명에 불과했고, 청나라 군사의 수는 10만을 넘어 중과부적이었다. 그래서 성 안에서는 매일 어전회의를 열고 항복을 하자, 최후까지 싸우자는 등 의론이 분분했다. 한편, 청나라 군사들도 남한산성이 공략하기 힘든 천혜의 요새임을 알고 성안의 식량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지연전술을 사용하여 싸우려 하지도 않고 포위만 하고 있었다. 이때 원두표(元斗杓) 장군이 어전에 나와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연로한 장군이 어떻게 싸우겠다는 거요? 잠시 기다려보오.” “이대로 있다가는 산성이 …
  • 춘궁동하남문화원30406-23
    탑산동 석탑의 석탑의 전설 370년(백제 근초고왕 25) 법화골에 예선과 갑분이라는 두 처녀가 있었다. 그들은 친형제 이상으로 우애가 깊어서 남들이 볼 때 기이할 정도로 다정한 사이였다. 점점 혼인할 나이가 되자, 양가의 부모들은 딸들을 출가시킬 준비를 하면서 은밀히 신랑감을 물색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거의 다 병정이 된 형편이라 마땅한 신랑감을 구하기 힘들었다. 당시는 고구려·신라·백제 삼국의 영토분쟁이 그칠 날이 없었던 때였는데, 싸움터에서 팔 하나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한 청년이 있었다. 혼기를 아주 놓치게 될까 걱정한 예선이라는 처녀의 집에서는 서둘러서 그 청년과 혼약을 맺었다. “얘, 갑분아. 우리가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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